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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금선 개인전 : 전미정 인터뷰 '자기 안의 편견과 매일같이 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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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안의 편견과 매일같이 싸우다.'


전미정(인터뷰어)


한금선은 달변이다. 이야기의 주제도, 이야기의 내용도 거침없이 방사형으로 퍼져나간다. 여기에 허스키한 목소리와 호탕한 말투까지 겹쳐지면, 화끈하고 막힘없는 사람일 거라 그의 성격까지 넘겨 짐작하게 된다. 하지만 솔직한 화술의 틈새에 스스로에 대한 자기 검열이 자주 따라 붙는 것은 의외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여러 번 이런 모습과 마주쳤다. 자신이 경계하는 지점으로 넘어설까 노심초사하며 스스로 반문하고, 자신의 안에 있는 탐욕이 자신을 먹어버릴까 끊임없이 스스로를 몰아세운다고나 할까.
그래서 한금선은 조금은 특별하고 곤란한 인터뷰이interviewee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미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는 않지만 스스로에게 느슨해지려 하지 않는다. 검열의 질문들은 남이 아니라 스스로에게서 나오며, 그 자신에게 향해있던 질문은 방향을 바꿔 결국엔 그와 마주 앉은 사람에게로 던져진다. 그리고 이 순간 인터뷰이와 인터뷰어interviewer는 잠시 뒤바뀐다. 마치 거울 앞에 마주앉은 것처럼.

담장 너머의 세계, 그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의 고향
늦은 사진공부를 시작하러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그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프랑스의 세 군데 지역에서 집시를 찍기 시작했다. 프랑스 북서쪽의 덤블랭Damblin, 성모의 기적으로 유명한 루흐드Lourdes, 집시들이 성녀 사라를 찾아 순례를 오는 프랑스 땅끝마을, 생트 마리 드 라 메르Saintes Maries de la Mer가 그곳이다. 그리고 2004년 귀국했다가 2005년 다시 출국해서 불가리아, 루마니아, 코소보 지역의 집시를 작업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털고 싶었던 작업 중 하나예요. 집시 작업은 먼저 자료조사를 해서 시작했다기보다는 내가 사진으로 인생을 살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고민의 여행이었죠.”
하지만 어째서 집시였을까. 신문에서 우연히 읽게 된 기사가 집시 작업의 동기가 됐다고 한다. 생트 마리 드 라 메르에 집시들이 모인다는 아주 짧은 기사 몇 줄이 그를 집시들의 순례에 동참하게 한 것이다.
“프랑스로 가기 전에 찍었던 서울역 앵벌이들도 그렇고, 프랑스의 버려진 기찻길에 사는 노숙자를 찍었을 때도 그렇고. 이런 작업을 하면서 담 너머에 있는 사람,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은 위험하다는 인식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워낙에 편견을 가지는 것 자체에 대한 터부가 강한데, 편견이 생기려하면 아예 그 반대 행동을 선택하는 게 습성처럼 되어 버렸죠. 솔직히 저도 겁이 안 나는 건 아니에요. 그러면 스스로 마취를 걸어요. 편견을 넘어서면 더 아름다운 세상이 있는데 용기를 내자. 사실 사진을 찍으며 겪는 경험들은 스스로를 검증하는 계기가 되기도 해요. 편견과 바로 마주한 공간에서 가장 솔직한 자신을 발견하는 현실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더 투명하게 볼 수 있거든요.”
그에게 문을 열어준 사람들은 하나같이 힘이 없고, 투덜거리고, 하소연할 곳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사진을 하기 전부터 한금선의 시야에 들어온 사람들은 대부분 편견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다. 시위 현장, 서울역 앵벌이, 노숙자, 집시, 독거노인, 정신요양원…. 그가 지금껏 해온 작업들은 하나같이 담장 너머의 사람들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
“사회적으로 실패했다고 하는 사람들 있죠. 마음은 너무 여리고 힘은 없고 그런.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보니까 가난하지만 착하고 이런 게 아니라 가난하니까 거칠어지고, 실패자라 독설가가 되고 그러더라고요. 이게 너무 화가 나요. 이 사회는 단추 하나를 못 끼우면 그 다음 번에 아예 기회를 안줍니다. 실패자를 끝까지 몰아서 독설가로 만들고, 분노에 찬 폭탄으로 만들죠. 그런데 이런 걸 대면할 경험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게 동기가 됐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그들을 만나는 것이 제 몫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마술적인 상상, 사진으로 이루는 담 너머와의 소통
“사회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저로서 이 작업을 푸는 것은 모험이었어요. 사실 이 사진들은 집시의 현실에 대한 보고서는 아니에요. 아까도 말했지만 내 자신의 고민을 풀기 위해 떠난 여행이라고 봐야하거든요. 저는 이런 고민을 할 때 제가 사진을 주었던, 파리의 한 친구를 생각합니다. 그 친구가 제 사진을 자기 아들 방에 걸어주었는데, 사진 속 아이들이 자기 아이의 친구가 됐다고 하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면 사진과 얘기를 나눈다는 거예요. 저는 제 사진이 이런 식으로 다가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집시를 만나고 왔지만 책을 보거나,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은 집시를 못 만날 수도 있다고 봐요. 대신 이 사진으로 인해 길 건너 빈민촌을 바라보며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게 된다면, 그리고 보는 사람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어떤 소중한 순간 하나를 건드려 준다면, 제게 문을 열어준 집시들이 조금은 행복할 것 같아요.”
그는 아주 단순하게, ‘사람들이 담장 너머를 보고 살아야할 것 같다’는 말로 정리했다. 결국 다른 세계의 사람을 보여주는 것은 그의 몫이지만, 그 다음은 보는 사람에게 남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주어진 편견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 아주 사소한 도미노 조각이 되는 것. 한금선이 사진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지점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생각은 그런 작은 바람이다.
“어떻게 불행한 상황에 놓인 집시를 찍어서 팔 수 있냐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아까 말한 친구 아이 이야기가 해답이에요. 일상 속에서 제 사진이 살아간다는 건, 저와 집시의 경험이 되살아난다는 뜻이고, 동시대를 사는 너무 다른 사람의 삶이지만 그렇게 만나서 묘한 소통을 이룰 수도 있다는 약간 마술적인 상상을 해요. 솔직히 전 사진을 잘 주는 편이에요. 암실이 있을 때는 정말 많이 선물했죠. 하지만 지금의 구조에서 개인 작업을 하는 사람에게 사진의 판매는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또 새로운 작업을 해야 하니까 중요하죠. 이것이 개인을 위한 작업이라고 해도 저는 담 너머에 가기 위해 신발을 갈아 신고, 땀을 쏟고, 제 시간을 들여야 하니까요. 물론 공공의 프로젝트라면 당연히 공유되어야 한다고 봐요.”

사람에 기댄 시간, 멈추지 않는 여정
2005년 집시 작업을 위해 불가리아에 머물렀을 때 그가 썼다는 일기를 보았다. 하루하루의 여정과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묘사, 그리고 소통의 지점에서 느낀 감정의 변화가 꼼꼼하게 적힌 작은 수첩으로, 현장에서 매 순간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들이 적혀있었다. 굳세고 강인한 한금선의 망설임, 두려움, 나약함, 혼란스러움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수첩이다. 페이지를 넘기는 중에 ‘내가 아이를 찍는 이유? 왜일까. 난 이용하는 건가, 이해하는 건가.’라는 문장이 눈길을 끌었다. 집시 작업에 유난히 아이들 사진이 많기도 했는데, 그도 촬영을 하며 고민이 된 지점이기는 했던 모양이다.
“다가가기 쉽다는 게 솔직한 이유죠. 아이들은 낯선 마을과 그곳 어른들에게 절 소개해주는 훌륭한 인솔자이기도 해요. 이해타산 없고 호기심도 많고 그러다보니 사실 아이들과 가장 먼저 친해집니다. 집시 가정에 아이들이 워낙 많은 것도 사실이고요. 그런데 현장에서의 친숙함과는 별개로, 현상되고 인화된 사진 속에서 보면 어른보다는 아이 안에 함축된 의미가 더 많아서 결국 아이 사진을 고르게 되더라고요. 아이는 객관적 경험이나 기호가 자리 잡지 않은 빈 터가 많아서 외부에서 봤을 때 선입견의 장치를 많이 무너뜨려요. 그 당시에는 제가 아이들이 찍기 쉬워서 찍는 건 아닐까 반성하며 일기를 썼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이유는 아닌 것 같습니다.”
때 국물이 줄줄 흐르는 얼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의 간소한 세간, 그 지역 정착민들의 집시에 대한 배타적인 경계심…. 힘든 사람들의 삶에 잠시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들의 삶에 개입하게 되거나 그러고 싶은 마음이 생긴 적은 없었을까?
“서울역 앵벌이 작업을 할 때 일이에요. 어느 날 보니 제가 대장노릇을 하고 있더라고요. 한참이 지나서도 제가 변했다는 걸 몰랐어요. 그런데 당시 앵벌이 대장이었던 기철이가 ‘누나, 왜 사진 안 찍어?’ 그러는 순간에 확 깼죠. 제가 할 일과 책임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노력할 부분은 따로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래서 그 경계가 흔들릴 때면 기철이 소리가 들려요. 정신요양원 작업을 할 때도 그랬어요. 갔는데 한 장도 찍을 수가 없더라고요. 꼭 아이 뒤통수 때리고 사탕 빼앗는 거 같아서. 그런데 요양원 생활자의 눈빛을 보는 순간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대체 뭐 하러 왔느냐고 묻는 눈빛이었죠. 그래서 항상 여기에 왜, 무엇을 위해서 갔는지…. 그런 고민을 해요. 카메라를 든 사람은 관찰자이면서 일시적인 개입자일 수밖에 없어요. 들어가면 그 삶을 인정해야지 내 잣대로 ‘불쌍하다’, ‘힘들겠다’라고 그들을 판단하는 건 전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2004년, 귀국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와 처음 인터뷰를 했을 때, 그가 한 말들이 떠올랐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사람에 기대어 있기 때문에, 인생의 찰나를 빌려준 그들에게 빚을 갚는 것은 사진뿐이라는 것. 그리고 일종의 후회와 가책을 통해 반성에 이르는 작업이라는 것. 다큐멘터리 사진이 힘들다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단할 것도 없다는 것. 만 3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 생각에는 “변한 게 없다”고 말한다.
“편견을 뛰어넘는 건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가능하죠. 하지만 머리로는 되도 몸으로는 잘 안되는 게 바로 편견입니다. 인식적으로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지점이 있다는 건 우리 사회를 보면 알 수 있어요. 그래서 문화적, 정서적 경험이 중요해요. 인식의 윤활유가 되는 경험. 이 과정에서 사진은 간접경험으로서 훌륭한 수단이 된다고 봐요. 사진은 편견을 뛰어넘는 데에 좋은 수단이죠.”
어찌 보면 귀국 후 개인전을 열기 까지 제법 시간이 걸린 편이다. 그 사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프로젝트 성향의 작업을 하며 전시에 참여하기도 했고, 저널의 의뢰를 받아 기획 작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젊은 작가다. 첫 전시에 대한 감회를 묻자 그는 첫 개인전을 한다는 설렘 보다는 집시 작업을 전시와 책으로 선보이는 기쁨이 더 크다고 말한다. 달리 어디에 발표할 것도 아니고 유명한 사진기자도 아닌데 그에게 문을 열어준 사람들이었으니까 말이다.
“사실 전시라는 방식은 너무 미약하다고 생각해요. 가장 소극적이고, 관람객을 수동적으로 만들 수 있는 소통방식이니까요. 물론 개인전이 한 작가의 캐리어를 증명하는 데에 중요하다지만, 정말 소통을 할 수 있는 매개가 그것뿐인 건지, 달리 대안은 없는 건지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세상의 모든 편견, 내안의 것과 내 밖의 것
인터뷰를 하는 내내 가장 많이 튀어나온 단어는 바로 ‘편견’이었다. 때로는 강박증적으로, 때로는 전투적으로 그는 ‘편견’에 대해 말했다. 그에게 그것은 마치 조금만 긴장을 풀면 시나브로 자신을 물들여 버리는 무시무시한 적敵인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두려운 것은 자신도 모르는 새 빠져드는 매너리즘이라고 했다. 유혹에 쉽게 굴복하고, 편안함에 안주 할지 모르는 자기 안의 약한 지점이야말로 가장 두려운 적이기 때문이다. 소외되고 무시 받는 것들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그가, 사실은 가장 개인적인 내면의 싸움에 직면해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스스로를 설득한 후에야 나온 (따라서 타인에게도 설득력을 가지는) 견해들이 그와 나 사이에 나열됐다. 자신의 생각을 주제 별로 서랍에 담아 저장이라도 해둔 것처럼 그의 말은 막힘이 없다. 하지만 그 거침없음 뒤로 수많은 망설임과 머뭇거림이 보인다. 자로 잰 듯,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오히려 불안한 자기 선언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의 선명하고 강한 발언은 스스로 계속 의심하고 경계하는, 자기 안의 위선과 나약함을 지배하기 위한 제스처인 지도 모른다. 이것은 강하고도 여린 한 사진가의 치열한 자기 검열 현장이다. 거칠고 세련되지 않지만, 그래서 진한 술자리 이후의 편두통처럼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솔직하지 않으면 드러내기 힘든 부분이다.
그리고 나는 이 지점이 한금선의 가장 ‘한금선다운’ 부분이라 생각한다. 그는 강하지만 흔들린다. 바람에 잘 넘어가는 풀대궁을 다시 곧게 세우려는 의지, 이것이 그에게서 느껴지는 건강함의 핵심이다. 물론 자신이 지키고 싶은 것을 지켜내기 위해 매번 시험대에 오르는 것은 비단 그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을 지켜내는 일은 쉽지 않다. 그에게도 쉬운 싸움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10년, 20년…. 얼마가 걸릴지 모르는 시간, 오래도록 자기와의 싸움을 멈추지 말기를 바란다.                    -전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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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사진 최연하 기자의 한금선 인터뷰 자료 (아래 링크)

http://blog.naver.com/photostan111?Redirect=Log&logNo=110021148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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